댓가를 바라고 남들한테 잘해주는 것도 문제이지만, 도와주는 사람의 진심 어린 정성을 당연시 하는 것(!)들이 더 큰 문제이다. 내가 이 문제에 항상 신경을 곤두 세우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당한게 있어서일까? 아니다. 아니다. (이중 부정 = 강한 긍정 -.-) 나는 그렇지 않기 위해서이다. 으하하. 항상 마음을 담은 행동엔 마음을 담은 표현으로라도 보답하자~!
데이비드 리스먼(David Riesman)이 '고독한 군중'(The Lonely Crowd·1950)이란 말을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고독한 군중'이 의미하는 바는 모 기업의 CF에 나온 생활 지침과 정확히 같지는 않다. 즉,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수백 개의 전화번호가 있지만, 마땅히 걸만한 사람도 그리고 전화오는 사람도 없는 상황을 설명하는 단어는 아니란 소리다.
우리는 자신만을 위해 산다고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타인지향적인 삶을 살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에 신경을 쓰고, 행동에 반응한다. 어쩌면 우리의 목표는 타인이 그려놓은 목표일지도 모른다. 타인이 그려놓은 목표가 변하면 우리는 우리의 목표도 바꾸려고 노력한다. 그저 바뀌지 않는 것은 그 목표를 따라가는 과정 자체와 타인으로 부터 오는 신호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일뿐.
오늘, 아니 요새 나는 군중 속의 고독을 느낀다. 누구는 핸드폰에 300명의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고, 메신저에는 1000명의 친구가 등록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난 핸드폰엔 항상 100명 수준의 전화번호가 있고 메신저에는 세어보지 않았지만 50명 정도의 친구가 등록되어 있다. 내 인간관계가 좋지 않기 때문에 남들에 비해 적은 수의 친구가 있는지 모르겠다. 작은 핑계를 대자면, 난 저 수준을 관리한다. 즉, 연락하지 않는 사람은 지운다는 소리이다. 아마 집착을 거부하는 내 습성이 그렇게 만드는게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락 오는 사람도 없고 마땅히 연락할 사람도 없다는 걸 새삼 느낀다. 내 고민거리를 아무런 비판 없이 들어줄만한 친구, 저 가슴 속 밑바닥에 숨겨 놓은 비밀을 알고 있는 친구. 그런 친구가 없다는게 슬프기만 하다. 차라리, 무인도에 혼자 내버려져 있다면 이런 비참함을 느끼지 않았으련만. 이렇게 토해내고자 하는 감정 따위 조차는 물론 무엇이 날 이렇게 만들었는지 고민 조차 하지 않을 테니깐 말이다.
내 옆에 놓인 핸드폰, 그리고 키보드, 매트릭스처럼 뻗어서 얽히고 섞여 있는 인터넷 공간. 이런 것들이 날 혼란 속에 가둔 철장이 아닐까? 그런데 그런 철장에 기대서 나는 내 외로움을 긁적거린다.
다른 블로그에서 읽은 글이다.
A와의 대화 중에 내가 물었다. "네 싸이는 왜 매번 우울해?" A는 대답했다. "난 싸이를 외로울 때 하거든, 그래서 내 싸이가 우울한가봐. 기쁜 순간에는 기쁜 일에 신경쓰느냐고 싸이를 안하게 되더라고." 대화가 끝난 후 곰곰히 생각해봤다. 지금 싸이에 열중하는 나는 외로운걸까? 그게 맞다면 지금 내 글을 읽는 당신도 외로운 거겠지? 하루에 사진이 5만장이 업되는 싸이월드. 우리의 외로움은 모두 진행중이다. 그래도 다행인거 나 혼자가 아닌, 모드들 외로워 하고 있다는 점. 그 점이 나에게 위안이 된다.
ExclamationMark™ 가끔 길을 걸어가다가 아니면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정말 말걸어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곤 한다. 한 두번 정도 정말 말을 걸기 직전까지 갔다가 그냥 포기한 적이 많았는데, 아무래도 용기가 부족한 탓이 아닐까한다.
나름 최고학번 입장에서 봤을 때, 저학번이랑 같이 수업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질 수 밖에 없다. 교수님 말씀처럼 이쁘지 않을 수가 없는 나이다. 그렇다고 내가 집적댈 수도 없는 노릇... 돌아가고 싶다 어린 나이로 ㅋㅋ
내가 듣는 수업 중에서 두 여학우가 자꾸 눈에 들어온다. 두명한테 느끼는 공통점은 늘 혼자인 편이 많으며, 말수도 없고(물론 혼자라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겉으로 풍겨나오는 아우라는 차갑기만 하다. 근데 왠지 모르게 끌리는 무언가가 있다. 이뻐서 그런거라고 한다면 딱히 댈 핑계는 없지만, 이쁜 것 말고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난 사람에 대해 분석하고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일까? 그 둘은 쉽게 보통의 사람들을 분석하고 판단할 때와 다른 기준이 필요할 거 같다. 지금까지 만나온 사람들과는 다르게 말이다. 그들의 차가운 이미지가 자꾸 내 호기심을 자극시킨다.
오늘, 마침 그 중 한 여학우가 늦게 들어왔는데, 들어옴과 동시에 향수 향기가 내 후각을 통해 뇌에다가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좋아한다고 고백해봐~! 창피할지는 몰라도 그녀에게는 하루 동안의 행복일테니깐" 정말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래볼까 하다가 그 차가운 이미지에서 나오는 말이 날 얼려버릴꺼란 생각에 현실로 돌아왔다.
20대가 다 가기 전에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좋아한다고 고백 한번 해보는 경험이 없다는건 너무 단조롭게 살았다는 반증이 아닐까? 그리고 예전에도 몇 번 경험해 보았는데, 후각이 내 감정을 지배하는게 가능한 걸까?
"밤운동 한다고 일부러도 뛰잖아~ 올려면 오는거지 뭐" 농담으로 말하면서 진심도 묻어있던 너의 목소리. 그랬다. 우린 그때 지금보다 시간이 훨씬 많았으니까. 그 다음날 강의마저 없으면 밤은 온전히 우리들의 것이었고, 만나고 싶으면 따지지 않고 만날수 있었던 날들..
"사람 많이 없고, 차도 많이 없으니까 밤엔 서울이 더 이뻐. 그지?" 딱히 갈데가 없던 우린 차를 몰고 강변을 달리면서도 이것이 마냥 긴 여행이라도 될거라는듯 들뜨고, 자유롭고 행복했었다 이제 니가 없는 밤은 무엇인가를 하기엔 충분히 지치고, 늦어 버린 밤이 되어버렸지만..
나는 조금 변했는지도 모르겠다 누구가를 만나 좋아지려는 마음이 생기려다가도 오늘은 좀 그렇고, 내일 보는게 좋을거 같다는 마음. 내일.. 이라는 변명. 내일되면 오늘보단 달라지겠지? 더 좋아지겠지.. 하며 미뤄보는것. 내가 자꾸 그러고 있다 나만큼 상대가 심드렁하면.. 그래, 그럼 나도 그만할래 나보다 상대가 열심이면.. 난 그렇게 열심인거 안좋아해 나만큼 상대가 주저하면.. 그래, 우린 여기까지일거야 내가 자꾸 그러고 있다 예전의 나는 그러지 않았었지 내가 널 더 좋아하는게 자랑스럽고, 니가 날 덜 좋아하는게 오히려 내가 할 일이 생긴거 같아서 치열했었고, 내일보단 오늘, 오늘중에도 이 순간, 지금 만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수 없을거 같아서 달리고 또 달렸었는데.. 그때의 나는.. 니가 떠나면서 너와 함께 사라져 버린건지도 모르겠다
늦은 밤, 강변을 혼자 달리면 아직도 가끔 너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왜 노래중에는 사랑을 노래하는 것들이 그렇게도 많을까?"
라는 나의 시시한 질문에 너는 그렇게 말했었다 그만큼 부족하니까.. 그리우니까.. 다들 잃어버린 것을 찾고 싶어하니까.. 그래서 사랑노래가 많은거라고. 나는 오늘 밤, 그 말을 기억한다 강변 너머 보이는 수많은 집들의 불빛들이 하나 둘 꺼져가는걸 보면서 누군가도 나처럼 사랑노래로 이 밤을 대신하고 있을거라고. 부족해서 그리워서 잃어버린 것을 찾고 싶어서..
ExclamationMark™ 출처를 밝히고 싶지만, 너무 오래된 삽화라서 밝힐 수가 없다. 미리 양해의 말씀을 구한다. 난 사랑을 잰다. 지나치게 이성적이기 때문이라는 그럴싸한 핑계를 대거나, 아직 짝을 못만나서 그렇다는 등의 말로서 피해갈 뿐이다. 내 몸 속에 뜨거운 피가 흐르는 지 궁금하다. 뜨거운 피가 흐르는 것을 느껴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사랑부터 재지 말아야 할텐데... 어차피 되감기는 줄자이니깐.
ExclamationMark™ 인터넷을 뒤적뒤적 거리다가 찾은 아주 오래된 삽화. 내가 나보다 어린 동생들이 나에게 어떻게 대학 생활을 하는게 좋은거냐고 물으면 꼭 해주는 말이 있다. "세상 기준의 시계말고, 네 시계를 갖도록 해라." 머.. 솔직히 이렇게 멋들어지게 말해주진 않는다. 나도 잘 못하지만 그래도 시간 관리의 중요성을 꼭 강조한다. 20대에 시간을 지배할 수 있다면 그 무엇도 무섭지 않을 것 같다. 사실 공부한다고 하면서 공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열심히 노는 것도 아니다. 그냥 해야지라는 생각 뿐. 게으름의 반대는 부지런함이 아니라 열정이다. 열정을 갖자!!!